파도와 바람에 닿는 그 끝자락에서, 고요하지만 압도적인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. 전북 군산의 방축도는 그렇게, 아는 사람만 아는 ‘시간 여행의 섬’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.

과거로 향하는 고인돌과 전설, 현재를 잇는 출렁다리, 그리고 자연이 빚어낸 걸작 독립문바위까지. 방축도는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, 한 걸음마다 수천 년을 넘나드는 경험을 선사한다.

이제 막 베일을 벗은 이 비밀스러운 섬을 걷다 보면, 도시의 모든 번잡함이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.

살아있는 섬의 역사

방축도는 단지 아름다운 섬이 아니다. 이 작은 섬이 간직한 역사의 두께는 상상 이상이다.

섬 뒤편 야트막한 산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8기가 발견되었고, 통일신라 시절 장보고와 당나라 상인의 전설까지 전해진다. 표류해온 이방인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는, 섬이 단지 외진 외딴섬이 아니라 당시 국제 교류의 한 축이었음을 보여준다.

지명 하나하나에도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다. 북서풍을 막는 지형에서 유래한 ‘방축금’, 모래가 많아 불린 ‘모래미’, 마을 중앙에 위치한 ‘샛금’까지. 방축도의 다양한 이름은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삶이 이 섬을 지나갔음을 증명한다. 섬 전체가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란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.

섬의 전설에 빠져들 즈음, 마치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오듯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. 바로 방축도와 광대도를 연결하는 길이 83m의 출렁다리다.

17억 원이 투입된 이 다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,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실감나는 통로다. 발아래로는 거센 물살이 휘몰아치고, 눈앞에는 고군산군도의 원시적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.

이 출렁다리는 말도부터 방축도까지 이어지는 다도해 트레킹 코스의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. 네 개의 다리를 건너며 다섯 개의 섬을 잇는 이 여정은, 섬 여행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.

방축도의 다리는 단순히 섬을 연결하는 구조물이 아니라, 시간이 응축된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무대다.

방축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독립문바위다. 이름처럼 독립문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바위는 수만 년 동안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끝에 탄생한 자연의 조형물이다.

섬 둘레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이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는데, 마치 대자연이 조각해놓은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.

밀물 때는 바위 사이로 바닷물이 출렁이고, 썰물 때는 그 아래까지 걸어 들어가 웅장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. 단순히 ‘신기한 바위’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.

이곳은 검은머리물떼새(천연기념물 제326호), 가마우지 같은 보호종의 서식지이기도 하다. 방축도의 독립문바위는 말 그대로 ‘보는 재미’와 ‘생태적 가치’를 동시에 지닌 보물 같은 장소다.

한때는 험한 바다와 암석 지형 때문에 낚시꾼들만 드나들던 방축도. 그러나 출렁다리의 개통으로 섬의 문턱은 낮아졌고, 지금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트레킹 명소로 거듭났다.

여전히 섬은 조용하고 한적하지만, 그 안에서 만나는 풍경과 경험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. 고대 유적과 자연 생태, 현대의 기술이 어우러져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.

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는 점도 여행객에겐 큰 장점이다. 짧게는 반나절, 여유롭게는 하루를 온전히 이 섬에서 보내며,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자.